음악(클래식)

오페라 쉽게 읽기

keesan 2008. 7. 27. 18:21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면 학창 시절 한 번쯤 손에 잡았을 법한 명작 중의 명작이다. 설혹 원작을 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내용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히트했던 최고의 연애소설이니.

그것을 오페라로 만들었다. "다 아는 이야기인데" 하겠지만, 오페라는 원래 다들 아는 이야기를 가지고 만드는 것이다. 오페라는 스토리텔링이 아니다. 누구나 잘 알고 있고 익숙한 소재를 음악이란 수단으로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오페라다.

1774년 발표된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괴테가 젊은 시절에 직접 겪었던 일에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덧붙여서 만들어 냈다.

괴테는 법대를 나온 후 고향 프랑크푸르트에서 멀지 않은 시골 베츨러에서 판사 시보 생활을 잠시 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그는 한 부인에게 마음을 빼앗겼는데, 시보를 마치고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오면서 한 계절 바람 같았던 열정은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괴테는 신문에서 한 자살사건을 접한다. 유부녀를 사랑한 청년이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한탄하며 권총으로 자신을 쏘았던 것이다. 기사를 읽은 괴테는 자신의 지난 추억이 되살아났다. 그는 직접 경험했던 시골을 배경으로 신문에서 본 사건을 접목시켜서 사상 최고의 연애 주인공인 청년 베르테르를 탄생시켰다.

이 소설이 얼마나 큰 히트를 쳤는가 하면, 당시 유럽 청년들은 책에 묘사된 베르테르식 패션, 즉 하늘색 프록 코트에 노란색 조끼를 입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 됐고, 유럽에서 수백 명의 청년이 권총 자살을 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이런 공전(空前)의 히트작을 오페라계에서 그냥 놔둘 리가 없었다. 적지 않은 작곡가들이 이 작품을 오페라로 만들었다. 독일의 크로이체르가 오페라 '샤를로트와 베르테르'를 발표했고 이탈리아의 코치아가 같은 제목의 이탈리아어 오페라를 발표했다. 그러나 두 작품은 뒤에 나타난 프랑스어 오페라에 지존(至尊)의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쥘 마스네(1842~1912)가 작곡한 '베르테르'였다. 마스네는 '마농', '르 시드', '에스클라르몽드', '돈 키호테', '타이스' 등의 오페라를 작곡한 프랑스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였다.

▲ 괴테의 소설‘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바탕을 둔 오페라‘베르테르’의 한 장면.AFP

오페라 '베르테르'는 아름다운 음악과 세련된 감각, 주인공들에 대한 뛰어난 심리 묘사와 극적인 구성으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오페라의 하나가 되었다. 특히 여주인공 샤를로트 역을 흔한 소프라노가 아닌 메조소프라노가 부르도록 설정함으로써 베르테르의 사랑을 받고 자신도 마음속으로는 그를 사랑하지만 자신의 처지 때문에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젊은 부인의 모습을 기막히게 그려내고 있다. 테너가 맡는 베르테르 역은 무려 네 곡의 격정적인 아리아와 세 곡의 이중창을 부르면서 시종 고뇌하는 베르테르의 모습을 처절하게 표현한다. 이 오페라는 두 남녀 주인공의 실력과 카리스마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으로 세 장면을 꼽을 수 있다. 먼저 무도회에서 돌아오는 장면이다. 처음 샤를로트의 무도회 파트너가 되어준 베르테르는 밤늦게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달빛을 받으면서 그녀에 대한 연모의 심정을 고백한다. 이 대목은 '달빛'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환상적인 관현악곡에 이어서 두 사람의 이중창 '저녁의 고백'으로 이어진다. 예상치 않은 그의 고백에 샤를로트는 화제를 돌리려고 하지만, 베르테르는 아랑곳하지 않고 열렬히 고백한다. 그러나 이중창 끝에 베르테르는 그녀가 이미 정혼한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낙담한다.

두 번째의 명(名) 대목은 샤를로트가 결혼한 이후 방랑의 길을 떠났던 베르테르가 그녀를 다시 찾아온 대목이다. 이 장면이 최고의 아리아 '어찌하여 나의 잠을 깨우는가, 봄바람이여'다.

베르테르가 샤를로트가 결혼하기 전 같이했던 추억을 떠올리면서 로마 시인 오시안의 명시에 자신을 빗대어 처절한 심정을 노래한다. 아리아의 후반부는 이어서 응답하는 샤를로트의 노래가 더해져 격정적인 2중창으로 변화한다. 자신을 감싸오는 베르테르의 팔 안에서 샤를로트는 '주여, 저를 지켜주소서'라고 외치고, 이에 베르테르는 '사랑은 신성한 것'이라고 소리치면서 그녀를 안은 팔에 힘을 준다. 그러나 결국 샤를로트는 이성을 찾으며 그를 거절하고, 절망한 베르테르는 자살을 결심한다.

세 번째 장면은 걱정이 되어 베르테르의 방으로 달려간 샤를로트가 이미 배에 권총을 발사하여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베르테르를 만나는 최후의 이중창 '저를 용서하세요'다. 샤를로트는 그를 껴안으며 그때서야 '실은 처음부터 나도 당신을 사랑했다'고 비로소 고백한다. 하지만 베르테르는 그토록 갈망하던 그녀의 품에서 24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이 작품은 많은 다른 오페라들처럼 여자 주인공이 죽는 것이 아니라, 남자 주인공이 목숨을 버린다는 점이 이채롭다.

'베르테르'의 최대의 매력은 역시 베르테르 역의 남성 가수다. 프랑스어에 능한 많은 명 테너들이 이 역에 도전해왔다. 역사상 최고의 베르테르로 기억되는 알프레도 크라우스를 필두로 니콜라이 게다, 호세 카레라스, 플라시도 도밍고, 로베르토 알라냐, 마르첼로 알바레스 등이 명연을 펼쳐왔다. 물론 샤를로트 역시 세계적인 메조소프라노들이 다투어 출연해왔다.

원작은 독일에서 만들어졌지만, 음악적으로는 프랑스적인 에스프리로 가득 찬 오페라 '베르테르'. 당신이 잊었던 젊은 날의 격정을 다시 한 번 기억나게 해줄 것이다.

 

조선일보 7/26 Weekly BIZ에서